프리츠 크라이슬러 대표작·추천 곡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쓴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의 대표작은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이에요.
어떤 음악인가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빈에서 태어난 바이올린의 거장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짧은 소품들을 쓴 작곡가예요. 그의 음악을 들으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달콤한 음색과 품위 있는 표현인데, 음을 살짝 밀어 올리고 끌어내리는 포르타멘토와 자유로운 루바토가 전쟁 전 빈의 아늑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요. 그는 연주회의 앙코르 곡으로 쓸 만한, 짧지만 잊히지 않는 선율의 소품들을 여럿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은 지금도 전 세계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즐겨 켜는 곡이에요. 무겁고 장대한 교향곡이 아니라, 한 곡 한 곡이 짧은 이야기 같고 왈츠의 흥취가 배어 있어서 처음 클래식을 접하는 사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가 바이올린 연주자였기 때문에, 그의 곡들은 하나같이 바이올린이 노래하듯 울리도록 쓰여 있답니다.
처음 들을 때
크라이슬러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는 바이올린 선율이 말하듯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느낌, 즉 포르타멘토와 루바토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음을 딱딱 맞추기보다 살짝 밀고 당기면서 노래하듯 흐르는 그 표현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예요. 리듬은 대개 왈츠처럼 삼박자로 가볍게 흔들리고, 곡의 길이도 짧아서 한 곡이 한 편의 짤막한 이야기처럼 다가와요. 화려한 기교보다 따뜻하고 기품 있는 음색이 중심에 있다는 걸 느끼면, 전쟁 전 빈의 정취가 왜 그의 음악에 깃들어 있다고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될 거예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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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의 삶
크라이슬러는 1875년 빈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일곱 살에 빈 음악원에 들어가 안톤 브루크너 등에게 배웠고, 이후 파리 음악원으로 건너가 레오 들리브, 랑베르 마사르, 쥘 마스네 등에게 작곡과 바이올린을 익혔어요.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적어도 스무 살은 넘는 마흔 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파리 음악원 바이올린 부문 최고상인 '프르미에 프리'를 받으며 졸업했어요. 1888년에는 뉴욕 스타인웨이 홀에서 미국 데뷔 무대를 가졌고, 모리츠 로젠탈과 함께 첫 미국 투어도 했어요. 그런데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빈 필하모닉 자리에 지원했다가 거절당하자, 한동안 음악을 접고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답니다.
1899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연주회, 그리고 1901년부터 1903년까지 이어진 미국 투어를 통해 크라이슬러는 비로소 진정한 명성을 얻었어요. 1910년에는 에드워드 엘가가 그를 위해 작곡하고 헌정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어요.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오스트리아 육군에 들어가 싸우다 부상을 입고 명예 전역했어요. 전쟁 중에는 뉴욕에 머물며 미국에서 지냈고, 1924년 유럽으로 돌아가 베를린과 프랑스를 거쳤어요. 이 시기 그는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빈 기상곡」 같은 사랑받는 소품들과 오페레타, 현악 4중주곡을 남겼고, 베토벤과 브람스, 파가니니 협주곡을 위한 카덴차도 썼는데 베토벤 협주곡의 카덴차는 오늘날에도 가장 많이 연주된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고,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어요. 1941년에는 뉴욕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여 두개골 골절을 입고 일주일 넘게 혼수상태에 빠지는 큰 사고를 겪기도 했어요. 말년에는 청력과 시력이 점점 나빠졌지만 1947년까지 공개 연주를 이어갔고, 그 후에도 몇 년간 방송 연주를 계속했어요. 1962년 뉴욕에서 노환으로 악화된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뉴욕 브롱크스 우드론 묘지의 개인 영묘에 안장되었어요. 그가 남긴 달콤하고 기품 있는 소품들은 지금도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앙코르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답니다.
- 1875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남
- 1887 파리 음악원을 최고상으로 졸업
- 1888 뉴욕 스타인웨이 홀에서 미국 데뷔
- 1899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하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
- 1910 엘가가 헌정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
- 1914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명예 전역, 11월 뉴욕으로 건너감
- 1935 그동안 다른 작곡가 이름으로 발표했던 소품들이 자신의 작품임을 밝힘
- 1943 미국 시민권을 취득
- 1947 마지막 공개 연주회를 가짐
- 1962 뉴욕에서 세상을 떠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그는 한동안 옛 작곡가들의 이름을 빌려 「사랑의 기쁨」 류의 소품들을 푸냐니, 타르티니, 비발디 등의 작품이라고 속여 발표했다가, 1935년에야 모두 자신이 쓴 곡이라고 밝혔어요. 비평가들이 항의하자 그는 「이름이 바뀌어도 가치는 그대로」라고 답했대요.
-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에도 뛰어나서, 그의 피아노 연주가 암피코 재생 피아노 롤에 남아 있어요.
- 1910년 에드워드 엘가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했고, 크라이슬러가 직접 초연을 맡았어요.
- 그는 과르네리 델 제수를 비롯해 스트라디바리, 베르곤치 등 여러 명기들을 소유했는데, 이 악기들 중 다수가 훗날 그의 이름을 붙여 불리게 되었어요. 1952년에는 소장하던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워싱턴 미국 의회도서관에 기증해 지금도 그곳 연주회에 쓰이고 있어요.
-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 육군에 짧게 복무하다 부상을 입고 명예 전역했고, 1914년 11월 뉴욕으로 건너가 전쟁 기간을 미국에서 보냈어요.
실내악 2곡
근현대 시대 1900~1945
드뷔시의 색채, 스트라빈스키의 리듬, 쇤베르크의 무조. 20세기 전반은 음악의 언어 자체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시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