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 대표작·추천 곡
짐노페디, 느리고 고요한 괴짜. 사티의 대표작은 『짐노페디 1번』, 『그노시엔느 1번』, 『발레 「퍼레이드」』예요.
어떤 음악인가
에릭 사티의 음악은 큰 몸짓이 없어요. 느리고 고요하게, 같은 화음을 가만히 되풀이하면서 듣는 사람의 숨을 천천히 가라앉혀요. 바그너식의 웅장한 낭만주의가 넘쳐나던 시절, 그는 정반대로 걸어가서 단순한 선율과 풀리지 않는 화음, 마디선조차 없애버린 악보를 썼어요. 제목도 엉뚱해서 「개를 위한 진짜 물렁한 전주곡」 같은 농담을 악보 위에 적어 놓기도 했지요. 카바레 피아니스트 출신다운 소박함과 신비주의에 대한 탐닉이 함께 있어서,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비워지는 음악이에요.
처음 들을 때
사티의 음악은 긴 멜로디로 감정을 끌고 가기보다, 같은 화음과 짧은 선율을 가만히 되풀이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요. 화성은 자주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서 묘하게 붕 뜬 느낌을 주고, 그노시엔느처럼 마디선 자체가 없는 곡도 있어서 박자가 자유롭게 흘러가요. 피아노 한 대로 이렇게까지 고요할 수 있다는 걸 짐노페디에서 먼저 느껴 보시고, 「퍼레이드」에서는 같은 작곡가가 관현악과 타자기 같은 소리까지 끌어들여 전혀 다른 소란스러움을 만든다는 것도 함께 들어 보세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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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의 삶
사티는 1866년 노르망디 옹플뢰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동생과 함께 고향 조부모 밑에서 자라며 한 오르가니스트에게 첫 음악 수업을 받았어요. 조모마저 세상을 뜨자 다시 파리로 돌아와 재혼한 아버지와 살게 되었고, 1879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교사들에게 재능이 없다는 평만 들었어요. 한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재입학했으나 여전히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뒤이어 날아온 입영장으로 군대에 갔지만 적응하지 못해 결국 탈영해버렸어요. 1887년 몽마르트르에 작은 방을 얻어 정착하면서 시인 콩타민 드 라투르와 가까워졌고, 아버지가 그의 첫 작품을 출판해 주었어요. 이 무렵 드뷔시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르 샤 누아르 카바레의 단골이자 피아니스트로 지냈어요.
1888년을 전후해 짐노페디, 그노시엔느 같은 지금 우리가 아는 사티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1891년에는 신비주의 종파 장미십자단의 작곡가 겸 카펠마이스터를 맡아 그들을 위한 곡을 썼고, 1892년 즈음부터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언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어요. 같은 해 장미십자단을 떠나 드 라투와 함께 발레작 「유스푸드」를 구상했고, 반(反)바그너 오페라를 초연한다고 광고까지 해놓고 정작 곡은 쓰지 않는 기행도 벌였어요. 1893년에는 화가이자 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과 사랑에 빠졌는데, 청혼은 거절당했지만 그녀가 옆방으로 이사 와 살게 되면서 깊이 몰입했고, 이때 「고딕식 소품」 같은 곡을 써서 마음을 달랬어요. 몇 달 뒤 그녀가 떠나며 큰 비탄에 잠겼고, 이 연애가 그의 생애 유일한 사랑으로 남았어요. 세월이 흘러 1917년에는 장 콕토를 만나 발레 「퍼레이드」로 이어지는 작업을 하게 돼요.
사티는 평생 가난과 독신을 벗어나지 못해 '무슈 르 포브(가난뱅이 씨)'라 불릴 정도였어요. 1925년 7월 1일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파리 근교 아르케이의 묘지에 묻혔으며 그가 살던 아파트 앞에는 작은 석고 기념물이 세워져 있어요. 화려한 수식 없이 마디선까지 지워버린 그의 작법은 이후 드뷔시, 라벨, 풀랑크 같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평생 단칸방에 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계속 바꿔간 괴짜였지만, 그 고요하고 반복적인 소리는 20세기 음악에 조용히 길게 남았어요.
- 1866 노르망디 옹플뢰르에서 태어남
- 1879 파리 음악원에 입학
- 1887 몽마르트르로 이사해 르 샤 누아르의 피아니스트로 지냄
- 1888 짐노페디 작곡
- 1890 그노시엔느 첫 곡들을 씀
- 1891 장미십자단의 작곡가 겸 카펠마이스터를 맡음
- 1893 수잔 발라동과 사랑에 빠짐
- 1917 장 콕토와 함께 발레 「퍼레이드」를 만듦
- 1925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사티는 1884년 첫 작품에 서명할 때부터 'Eric' 대신 'Erik'이라고 썼고, 이 철자가 지금 우리가 아는 이름이 되었어요.
- 친구 알퐁스 알레는 신비주의에 깊이 빠진 그를 '에조테릭 사티'라는 말장난으로 불렀어요.
- 군대 생활이 맞지 않아 추운 겨울밤 웃통을 벗고 서 있는 식으로 일부러 기관지염에 걸려 제대했다고 전해져요.
- 1893년 화가 수잔 발라동과 나눈 사랑이 그의 생애 유일한 연애였고, 그녀는 그의 초상화를 그려 선물하기도 했어요.
- 후기에는 「엉성한 전주곡-개를 위해」처럼 일부러 엉뚱한 제목을 붙인 곡들을 발표했어요.
- 발레 「퍼레이드」는 사티의 음악에 장 콕토의 대본, 피카소의 무대·의상, 레오니드 마신의 안무가 더해진 작업이었어요.
피아노 2곡
발레 1곡
- 발레 「퍼레이드」 발레 · 18분
근현대 시대 1900~1945
드뷔시의 색채, 스트라빈스키의 리듬, 쇤베르크의 무조. 20세기 전반은 음악의 언어 자체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시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