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파헬벨 대표작·추천 곡
카논 한 곡으로 영원히 남은 오르가니스트. 파헬벨의 대표작은 『카논 D장조』예요.
어떤 음악인가
파헬벨은 오르간 앞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에요. 그의 음악은 요란하지 않아요. 선율이 또렷하고 화성이 맑아서, 처음 듣는 사람도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북스테후데처럼 화성적 모험을 즐기거나 기교를 과시하는 쪽은 아니었고, 대신 누구나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대위법을 선호했어요. 오늘날 그는 단 한 곡, 《카논 D장조》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코랄 프렐류드와 푸가라는 형식을 발전시킨 중기 바로크의 중요한 작곡가였습니다. 뜻밖에도 생전에는 오르간 교사이자 교회음악가로 훨씬 더 널리, 꾸준히 사랑받았던 사람이에요.
처음 들을 때
파헬벨을 처음 들을 때는 복잡한 화성이나 현란한 기교를 기대하지 말고, 선율선이 얼마나 또렷하게 들리는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같은 저음 진행 위에서 성부들이 차례차례 쌓여가는 방식, 즉 변주와 반복의 짜임새가 그의 음악을 지탱하는 핵심이에요. 오르간 음악가답게 성부 간의 균형과 명료함을 중시했기 때문에, 각 악기나 성부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질서 있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북스테후데 같은 동시대 작곡가에 비해 훨씬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는 것도 그만의 특징입니다.
어떤 곡부터 들을까
- 카논 D장조 — 파헬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자, 또렷한 선율과 맑은 화성이라는 그의 음악적 성격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곡이에요.
실황으로 보기
가입은 30초 · 이메일·전화번호 없이 책비가 뭐예요? ›
파헬벨의 삶
파헬벨은 1653년 뉘른베르크에서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그해 9월 1일 세례를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과 학업 모두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하웁트슐레와 알트도르프 대학을 거쳤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레겐스부르크의 김나지움에서 장학생으로 공부를 이어갔고, 이곳에서 음악 선생 카스파어 프렌츠를 통해 이탈리아 음악과 가톨릭 교회음악에 눈을 떴어요. 1673년 무렵에는 빈으로 가서 슈테판 대성당의 부오르가니스트가 되었는데, 당시 빈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중심지로 이탈리아풍 취향이 지배하던 도시였습니다. 루터교 신자였던 파헬벨이 가톨릭 음악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도 이 시기 덕분이에요.
1677년 아이제나흐의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되면서 그의 인생에 중요한 인연이 시작됩니다.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버지 요한 암브로시우스 바흐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 그 자녀들을 가르치게 된 거예요. 궁정의 사정으로 금방 일자리를 잃었지만, 이듬해 에르푸르트의 프레디거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자리를 옮기며 12년을 머물게 됩니다. 이곳에서 바흐 집안과의 인연은 더 깊어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요한 제바스티안의 맏형)를 가르치고, 요한 암브로시우스의 딸의 대부가 되기도 했어요. 에르푸르트에서의 계약은 매년 예배를 위한 코랄 프렐류드를 작곡하도록 요구했고, 이것이 그의 가장 특징적인 작품군을 만들어낸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첫 아내 바르바라와 아들을 전염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고, 그 슬픔 속에서 첫 출판작인 코랄 변주곡집을 세상에 내놓았어요.
말년에는 슈투트가르트와 고타를 거쳐 1690년대 이후 다시 고향 뉘른베르크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는 많은 제자를 두어 남독일과 중부 독일 작곡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두 아들 빌헬름 히에로니무스와 카를 테오도어(훗날 아메리카로 건너간) 역시 오르간 작곡가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1706년 3월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방대한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특히 코랄 프렐류드와 푸가의 작법은 이후 독일 오르간 음악의 토대가 되었어요. 오늘날 대중에게는 《카논 D장조》 한 곡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진짜 유산은 교회 오르간 의자 위에서 쌓아 올린 평생의 가르침과 작품들에 있습니다.
- 1653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9월 1일 세례를 받음
- 1669 알트도르프 대학에 입학, 성 로렌츠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됨
- 1670 레겐스부르크 김나지움 장학생으로 학업을 이어감
- 1673 빈으로 가 슈테판 대성당의 부오르가니스트가 됨
- 1677 아이제나흐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바흐 집안과 인연을 맺음
- 1678 에르푸르트 프레디거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부임
- 1681 첫 아내 바르바라 가블러와 결혼
- 1683 첫 출판작 《무지칼리셰 슈테르벤스게당켄》 발표
- 1684 두 번째 아내 유디트 드로머와 결혼
- 1706 3월 세상을 떠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오늘날 전 세계에서 결혼식 음악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카논 D장조》를 남겼지만, 정작 생전의 파헬벨은 오르간 교회음악가로 더 유명했어요.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버지 요한 암브로시우스 바흐와 가까운 친구였고, 바흐의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를 직접 가르쳤습니다.
- 첫 아내와 아들을 전염병으로 잃은 뒤 써낸 코랄 변주곡집 《무지칼리셰 슈테르벤스게당켄(죽음에 대한 음악적 상념)》이 그의 첫 출판작이에요.
- 아들 카를 테오도어 파헬벨은 아메리카 식민지로 건너가 오르간 작곡가로 활동했고, 딸 아말리아 파헬벨은 화가 겸 판화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 빈 슈테판 대성당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훗날 하이든도 같은 성당에서 어린 시절 음악가로 일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실내악 1곡
- 카논 D장조 실내악 · 5분
바로크 시대 1600~1750
바흐·헨델·비발디의 시대예요. 여러 성부가 서로 쫓고 대답하는 대위법, 통주저음 위에 얹히는 선율, 빠르고 느린 악장이 번갈아 오는 협주곡 형식이 자리 잡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