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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대표작·추천 곡

Isang Yun · 1917~1995 · 한국·독일 · 오늘의 음악

통영에서 베를린까지, 동양의 소리를 서양 악기로. 윤이상의 대표작은 『가락』, 『예악』, 『첼로 협주곡』이에요.

어떤 음악인가

윤이상의 음악은 서양 관현악기로 연주되지만, 그 안에서 울리는 것은 한국 전통 음악의 숨결이에요.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단순히 음을 내는 게 아니라, 한 음에서 떨리고 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마치 거문고나 대금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살아 움직이죠. 그는 이것을 「주요음(Hauptton)」 기법이라 불렀는데, 서양 음악의 화성 진행이 아니라 하나의 음이 선, 농담, 떨림을 가진 붓글씨처럼 번져가는 방식이에요. 유럽 전위음악의 최첨단 기법을 쓰면서도 도교와 불교, 한국의 궁중음악 「예악」의 정신을 담아냈기 때문에, 서양 현대음악사에서 동양의 소리를 가장 깊이 있게 들여온 작곡가로 꼽혀요. 그래서 그의 곡을 듣는다는 건, 유럽 전위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나는 순간을 듣는 일이기도 해요.

처음 들을 때

윤이상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는 멜로디의 「시작과 끝」보다 한 음이 어떻게 떨리고 휘어지고 미끄러지는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서양 악기가 내는 소리인데도 거문고나 대금의 농현처럼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명확한 주제나 반복되는 리듬을 찾기보다는, 여러 선율이 겹쳐지며 하나의 음향 덩어리처럼 흘러가는 느낌을 즐기는 편이 좋아요. 관현악곡에서는 악기들이 쌓여 만드는 두터운 음향의 층을, 독주곡에서는 한 악기가 홀로 숨 쉬듯 떨리는 섬세한 장식음을 느껴 보세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1. 피리 — 오보에 홀로 떨고 휘어지는 소리로, 윤이상 특유의 「주요음」 기법을 가장 간결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이에요.
  2. 가락 — 플루트와 피아노의 짧은 실내악으로, 선율이 서양 악기 위에서 한국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편하게 맛볼 수 있어요.
  3. 예악 — 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으로, 한국 궁중음악 예악의 울림을 관현악으로 옮긴 곡이에요.
  4. 첼로 협주곡 — 협주곡 특유의 극적인 구조 속에서 독주 첼로가 떨림과 미끄러짐으로 말하듯 노래해요.
  5. 교향곡 1번 — 말년에 쓴 교향곡 연작의 출발점으로, 그의 음악 언어가 가장 성숙한 형태로 집약된 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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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곡 8곡 책비에서 듣기초상과 소개, 어떤 곡부터 들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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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삶

윤이상은 1917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어요. 아버지의 반대에도 열세 살 때 바이올린과 기타를 독학하듯 배웠고, 동네 영화관에서 자신이 쓴 선율이 연주되는 걸 듣고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상업학교 진학을 조건으로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오사카음악대학에서 첼로와 작곡, 음악이론을 배웠고, 이후 도쿄에서 이케노우치 도모지로에게 대위법을 익혔어요. 해방 후에는 고향 통영으로 돌아가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음악을 맡았고, 전쟁고아를 위한 부산시립고아원 소장을 지내기도 했어요. 서울대학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치며 활동하던 중 1956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유럽 유학을 결심했어요.

1956년 파리를 거쳐 1957년 베를린으로 간 윤이상은 보리스 블라허, 요세프 루퍼 등에게 배우며 유럽 현대음악의 흐름 속으로 들어갔어요. 1958년 다름슈타트 현대음악강습에 참가하며 동시대 작곡가들과 교류했고, 「일곱 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작품」을 초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죠. 1965년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와 1966년 관현악곡 「예악」이 잇달아 초연되면서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어요. 그러나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서울로 끌려가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 시련을 겪었고, 옥중에서도 「나비의 미망인」을 작곡해 뉘른베르크에서 큰 호평 속에 초연됐어요. 스트라빈스키와 카라얀을 비롯한 세계 음악인 200여 명이 탄원서에 서명한 끝에 그는 석방되었고, 이후 서독 국적을 얻어 죽을 때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했어요. 이후 1975년 첼로 협주곡, 1981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다섯 편의 교향곡 연작을 쓰며 작곡가로서 가장 깊은 시기를 보냈어요.

윤이상은 하노버와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평생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했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광주여 영원히」 같은 곡으로 자신의 뜻을 음악에 담았어요. 1982년부터 평양에서 매년 윤이상 음악제가 열렸고, 1990년에는 그의 제안으로 남북 합동 음악회가 성사되기도 했어요. 1994년 고국에서 음악축제가 열려 참석하려 했지만 정치적 활동 중단을 요구받자 이를 거부했고, 끝내 건강이 악화되어 1995년 11월 베를린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평생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았지만, 통영국제음악제와 국제 윤이상 작곡상, 윤이상 기념관 등을 통해 그의 음악과 삶은 지금도 기려지고 있어요.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교향곡 1곡

협주곡 2곡

관현악 3곡

실내악 1곡

독주 1곡

오늘의 음악 시대 1945~

전쟁 뒤의 음악은 더 단순해지기도(패르트·글래스), 더 복잡해지기도(리게티) 했어요. 윤이상·진은숙 같은 한국 작곡가도 세계 무대의 한가운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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