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대표작·소설 추천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은 『레 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웃는 남자』예요. 처음 읽는다면 아래 「어떤 책부터 읽을까」를 먼저 보세요.
가입은 30초 · 이메일·전화번호 없이 책비가 뭐예요? ›
빅토르 위고(1802~1885)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열아홉 해 망명 생활 끝 무렵 건지섬에서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어요.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대성당을 살렸고, 사형 제도와 가난에 맞서 글을 썼어요. 세상을 떠났을 때 이백만 명이 장례 행렬을 따랐어요.
아래 책마다 줄거리·작가 이야기·쓰인 때와 독자들의 별점, 한 줄 평이 있어요. 읽은 책은 책비 앱의 서가에 꽂아 두세요.
빅토르 위고의 문장 책비 사색 문장 7개
삶의 가장 큰 행복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 있다. 나 자신이기에 사랑받는다는, 아니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다는 확신 말이다.
삶, 불행, 고독, 버림받음, 가난은 저마다 영웅을 지닌 싸움터다. 이름 없는 영웅들, 때로는 이름을 떨친 영웅들보다 더 위대한 영웅들이다.
거닐 작은 뜰과 꿈꿀 무한한 세계. 발밑에는 가꾸고 거둘 것이, 머리 위에는 살피고 묵상할 것이 있다. 땅에는 꽃 몇 송이, 하늘에는 모든 별.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이 있느냐고 묻지 않고, 슬픔이 있느냐고 묻는다.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살지 못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원문에서 확인한 문장이에요. 책비가 아침·낮·저녁 한 문장씩 보내 드려요. 오늘의 문장 보기 →
어떤 작가인가
빅토르 위고는 시인으로 시작해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로 여든셋까지 살며 19세기 프랑스의 격변을 함께 지나온 사람이에요. 그의 소설 한가운데에는 늘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서 있어요. 빵 한 덩이 때문에 감옥에 간 장 발장,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노트르담의 종지기 콰지모도처럼요. 위고는 그들의 고통을 크고 장엄하게 펼쳐 보이면서, 한 사람에게 베푼 자비가 그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었어요. 「사랑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마지막 메모처럼, 그의 글은 지금도 읽는 이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말을 걸어요.
처음 읽을 때
『레 미제라블』은 다섯 부로 된 긴 소설이고, 줄거리 사이에 워털루 전투나 파리의 하수도, 수도원 이야기 같은 긴 곁가지가 들어 있어요. 처음 읽을 때는 곁가지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장 발장을 따라가다가, 다시 읽을 때 그 대목들로 돌아오면 위고가 왜 그렇게 썼는지 보여요. 위고의 문장은 웅변처럼 크고 힘이 있어서, 마음에 닿는 대목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더 잘 들려요.
어떤 책부터 읽을까
- 『사형수 최후의 날』 — 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처형되기까지의 마지막 날들을 자기 목소리로 적어 내려가는 짧은 소설이에요. 1829년 젊은 위고가 평생 이어 간 사형 폐지 운동의 출발점이라, 그의 마음을 가장 빨리 알 수 있어요.
- 『파리의 노트르담』 — 15세기 파리를 무대로 종지기 콰지모도와 거리의 무희 에스메랄다의 운명을 따라가는 소설이에요. 대성당이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살아나는데, 이 소설 덕분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파리가 복원하게 되었어요.
- 『레 미제라블』 — 빵 한 덩이 때문에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 발장이 한 주교의 자비를 만나 새사람이 되어 가는 이야기예요. 망명지에서 완성한 위고 필생의 작품으로, 가난과 정의, 용서에 대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모두 담겨 있어요.
처음 → 그다음 → 깊이, 책비 편집자의 순서예요.
위고의 삶
빅토르 위고는 1802년 2월 26일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군대 장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오가며 자랐고, 부모가 따로 살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어요. 열네 살에 「샤토브리앙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일기에 쓸 만큼 일찍 작가를 꿈꿨고, 열다섯 살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시 경연에서 가작에 뽑혔는데 심사위원들은 그가 그 나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해요. 1822년 첫 시집으로 왕의 연금을 받게 되었고, 같은 해 어린 시절 친구 아델 푸셰와 결혼했어요. 1827년 희곡 『크롬웰』의 서문으로 낭만주의의 깃발을 들었고, 1830년 희곡 『에르나니』 초연 때는 낭만파와 고전파가 극장에서 맞붙는 소동이 여러 날 이어졌어요.
1831년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유럽 곳곳에서 번역될 만큼 인기를 끌면서 위고는 소설가로도 이름을 굳혔어요. 시집과 희곡을 잇달아 내놓았고, 세 번 떨어진 끝에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어요. 1843년 열아홉 살 맏딸 레오폴딘이 신혼의 남편과 함께 센강에서 배가 뒤집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한동안 펜을 들지 못할 만큼 깊은 슬픔에 잠겼어요. 1845년 귀족원 의원이 된 뒤로 정치에 뛰어들어 사형 폐지와 가난 퇴치를 외쳤고, 같은 무렵 훗날 『레 미제라블』이 될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자 그를 공개적으로 반역자라 부르며 맞섰고, 결국 프랑스를 떠나야 했어요.
위고는 벨기에 브뤼셀을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섬과 건지섬에서 19년 가까이 망명 생활을 했어요. 1859년 사면이 내려졌지만 정부 비판을 멈출 수 없다며 돌아가지 않았고, 망명지에서 『명상 시집』과 『세기의 전설』, 『레 미제라블』(1862)과 『바다의 노동자』(1866) 같은 대표작을 펴냈어요. 건지섬에서 살던 집 오트빌 하우스는 『명상 시집』이 잘 팔려 들어온 돈으로 산 집이었어요.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나자 파리로 돌아와 큰 환영을 받았고, 마지막 소설 『93년』(1874)을 펴내고 상원 의원으로도 일했어요. 1885년 5월 22일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가난한 사람처럼 장례를 치러 달라고 했지만 국장으로 치러졌고, 이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장례 행렬에 함께하며 그를 팡테옹까지 배웅했어요.
- 1802브장송에서 태어남
- 1822첫 시집, 아델 푸셰와 결혼
- 1829『사형수 최후의 날』
- 1830『에르나니』 초연, 낭만주의 논쟁
- 1831『파리의 노트르담』
- 1843맏딸 레오폴딘을 잃음
- 1851쿠데타에 맞서 망명길에 오름
- 1862『레 미제라블』
- 1870파리로 돌아옴
- 1885세상을 떠나 팡테옹에 묻힘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는 것
- 위고는 자신이 1801년 6월 24일에 생겨났다고 믿었는데,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의 죄수 번호 24601이 여기서 왔다고 해요.
- 1839년 툴롱의 감옥을 둘러보며 남긴 메모에, 위고는 주인공 이름을 「장 트레장」이라고 큼직하게 적어 두었어요. 이 이름이 나중에 장 발장이 되었어요.
- 위고는 평생 4,0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지금도 3,000점쯤 남아 있어요. 대부분 종이에 펜과 짙은 갈색이나 검은 잉크로 그린 작은 그림이에요.
- 여든 번째 해에 들어선 1881년, 파리 시는 그가 살던 에일로 대로의 이름을 빅토르 위고 대로로 바꿨어요. 그 뒤로 그에게 오는 편지에는 「파리, 그의 대로, 빅토르 위고 씨께」라고 적혔다고 해요.
빅토르 위고의 작품 8권 읽은 책에 체크해 보세요
- 레 미제라블 1빅토르 위고
빵 한 조각을 훔쳐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 발장이 주교의 은촛대에 마음을 고쳐먹어요. - 파리의 노트르담 1빅토르 위고
'노틀담의 꼽추'로 더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 웃는 남자 1빅토르 위고
- 사형수 최후의 날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 『사형수 최후의 날』. - 바다의 노동자빅토르 위고
- 93년빅토르 위고
- 노트르담의 꼽추빅토르 위고
『서울대 선정 세계문학전집』은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위대한 문학 작품을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교수 등 전문가들이 번역하고 유명 아동 문학가… - 위고 시선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이라는 걸작을 남긴 빅토르 위고는 사실 수많은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가입은 30초 · 이메일·전화번호 없이 책비가 뭐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