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들리브 대표작·추천 곡
꽃의 이중창과 발레 「코펠리아」. 들리브의 대표작은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 『발레 「코펠리아」 모음곡』이에요.
어떤 음악인가
레오 들리브의 음악을 한마디로 그리면, 극장에서 자란 사람이 쓰는 음악이에요. 어린 시절 성가대와 교회 오르간, 극장 반주자 자리를 두루 거친 그는 무대 위에서 음악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혔거든요. 그래서 그의 선율은 늘 노래하듯 유려하고, 발레곡에서조차 춤추는 몸의 리듬을 섬세하게 따라가요. 당시만 해도 발레 음악은 그저 무용수를 위한 반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들리브는 「코펠리아」와 「실비아」를 통해 그 음악 자체에 깊이와 비중을 실어, 이후 발레 음악이 하나의 예술로 대접받는 길을 열었어요. 오페라 「라크메」의 꽃의 이중창은 지금도 광고와 영화에 흘러나올 만큼 널리 사랑받는, 그의 매혹적인 멜로디 감각을 잘 보여주는 곡이에요.
처음 들을 때
들리브를 처음 들을 때는 선율이 노래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결을 따라가 보세요.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게 장면의 분위기를 음악으로 또렷이 그려내는 솜씨가 돋보이고, 발레곡에서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경쾌하고 정교한 리듬이 특징이에요. 「라크메」의 꽃의 이중창처럼 두 성부가 어우러지는 순간에는 화성이 포개지며 만들어내는 색채감에 귀를 기울여 보시고요. 전체적으로 가볍고 우아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균형이, 그의 음악을 오래도록 사랑받게 한 힘이에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 — 들리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목소리가 겹치며 흘러가는 아름다운 선율이라 처음 만나기에 좋아요.
- 발레 「코펠리아」 모음곡 — 발레 음악에 깊이를 불어넣은 대표작으로, 그의 춤곡 감각과 관현악 색채를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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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브의 삶
들리브는 1836년 프랑스 사르트의 생제르맹뒤발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우체국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의 딸이자 오르가니스트의 조카로, 재능 있는 아마추어 음악가였어요. 184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은 파리로 옮겨 갔고, 들리브는 열두 살 생일이 지난 직후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어요. 음악원에서는 화성, 피아노, 오르간을 거쳐 열여덟 살에 아당에게 작곡을 배웠어요. 소년 시절 그는 노래 실력이 빼어나 라 마들렌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했고, 1849년 마이어베어의 「예언자」 초연 무대에도 함께 섰어요. 학생 신분으로 생피에르 드 샤이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와 테아트르 리릭의 반주자를 겸하며 일찌감치 극장 음악에 깊이 발을 들였어요.
1856년 폴리누벨 극장에서 첫 무대 작품을 올린 뒤, 들리브는 14년 동안 거의 해마다 한 편씩 코믹 오페라를 썼어요. 오페라극장에서 반주자와 합창 지휘를 맡던 중 1866년 발레 「라 수르스」의 작곡을 의뢰받으며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그의 선율적 재능이 두드러져 함께 작곡한 민쿠스를 완전히 압도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어요. 1870년에는 발레 「코펠리아」로 큰 성공을 거두며 널리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 오페라극장 자리를 내려놓고 작곡에만 전념하기로 했어요. 이 무렵 레옹틴 에스텔 드냉과 결혼했고요. 1876년에는 신화를 소재로 한 대형 발레 「실비아」를 선보여 춤곡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 1877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어요. 꾸준히 더 진지한 성악 작품을 쓰고 싶어 했던 그는 1883년 오페라 「라크메」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자신의 대표작을 완성했어요.
1881년 들리브는 음악원 작곡 교수로 임명되어 제자들을 성심껏 돌보았고, 특히 프랑스 최고 권위의 상인 로마대상에 학생들이 입상하길 간절히 바랐다고 해요. 1884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며 음악계에서 확고한 명성과 안정된 삶을 누렸어요. 말년에는 또 다른 오페라 「카시아」를 쓰고 있었지만 완성하지 못했어요. 간헐적으로 병을 앓던 그는 쉰다섯 번째 생일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혔어요. 「코펠리아」와 「실비아」는 지금도 세계 발레 레퍼토리의 중심을 지키고 있고, 「라크메」 역시 오페라 극장에서 종종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 1836 프랑스 사르트 생제르맹뒤발에서 태어남
- 1848 파리 음악원에 입학
- 1856 첫 무대 작품을 폴리누벨 극장에서 초연
- 1866 발레 「라 수르스」 작곡으로 널리 알려짐
- 1870 발레 「코펠리아」 초연, 큰 성공을 거둠
- 1876 발레 「실비아」 초연
- 1881 파리 음악원 작곡 교수로 임명
- 1883 오페라 「라크메」 초연
- 1884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
- 1891 파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들리브는 소년 시절 노래 실력이 뛰어나 성가대원으로 활동했고, 1849년 마이어베어 오페라 「예언자」의 파리 초연 무대에 직접 출연한 적이 있어요.
- 그는 자신에게 작곡을 가르친 아당의 발레 「르 코르세르」에 들어갈 왈츠 디베르티스망을 의뢰받아 썼는데, 이 곡은 훗날 그의 발레 「라 수르스」에 다시 쓰였어요.
- 1866년 발레 「라 수르스」를 루트비히 민쿠스와 나누어 작곡했을 때, 들리브의 선율이 돋보여 민쿠스가 상대적으로 가려졌다는 평이 있었어요.
- 가벼운 희가극 작곡가로만 비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발레로 성공을 거둔 뒤에도 일부러 가곡과 진지한 오페라에 도전했어요.
- 1881년 음악원 작곡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 들리브는 스스로 푸가와 대위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매우 성실하게 학생들을 지도했어요.
-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 미완성으로 남은 마지막 작품은 오페라 「카시아」였어요.
오페라 1곡
-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 오페라 · 5분
발레 1곡
- 발레 「코펠리아」 모음곡 발레 · 20분
낭만 시대 1820~1900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바그너의 악극, 차이콥스키의 발레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오케스트라가 커졌으며, 쇼팽·리스트의 피아노가 꽃을 피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