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프랑크 대표작·추천 곡
오르간 연주자가 쓴 단 하나의 교향곡. 프랑크의 대표작은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교향곡 D단조』, 『「생명의 양식」』이에요.
어떤 음악인가
세자르 프랑크는 평생 교회 오르간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쓴 음악이 어떻게 깊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작곡가예요. 그의 소리를 한마디로 말하면, 오르간처럼 겹겹이 쌓이는 화성과 바흐에게서 배운 대위법이 느리게 차오르다가 어느 순간 큰 울림으로 터지는 음악이에요. 그는 평생 단 하나의 교향곡만 남겼지만, 그 한 곡과 몇 편의 실내악이 프랑스 음악사에서 순수 기악의 부흥을 이끈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어요. 젊어서는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그의 진가는 나이 들어서야, 오르간을 치며 조용히 쌓아 올린 내공이 만년의 몇몇 걸작으로 터져 나오면서 드러났어요. 처음 듣는 분이라면, 선율이 당장 손에 잡히기보다 화성이 천천히 색을 바꾸며 쌓여 가는 느낌에 귀를 맡겨 보시면 좋아요.
처음 들을 때
프랑크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는 선율이 금방 외워지는 쾌감보다, 화성이 서서히 색을 바꾸며 쌓여 가는 느낌에 집중해 보세요. 그는 오르간 연주자답게 성부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대위법을 즐겨 썼고, 하나의 주제가 여러 악장을 가로질러 다시 나타나는 순환형식을 자주 사용했어요. 리듬은 급하게 몰아치기보다 느리게 긴장을 모았다가 풀어 주는 쪽에 가깝고, 그 끝에서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묵직하고 풍성한 울림이 찾아와요. 바흐의 폴리포니와 베토벤의 전개, 리스트와 바그너의 반음계적 화성이 그의 손끝에서 하나로 녹아드는 과정을 따라가 보시면 좋아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 「생명의 양식」 — 짧고 따뜻한 성가여서 프랑크 특유의 화성이 주는 평온함을 부담 없이 먼저 느껴 볼 수 있어요.
-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선율 속에서 순환형식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작품 전체를 하나로 묶는지 들어 볼 수 있어요.
- 교향곡 D단조 — 그가 평생 남긴 단 하나의 교향곡으로, 오르간 연주자다운 두터운 화성과 장대한 구성을 제대로 만날 수 있어요.
- 전주곡, 코랄과 푸가 — 피아노 한 대로 코랄과 푸가가 쌓여 가는 구조를 들으며, 그의 음악이 어떻게 천천히 깊어지는지 더 자세히 느껴 볼 수 있어요.
실황으로 보기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 Martha Argerich Renaud Capuçon Cesar Franck Sonata
실황 · Mac McClure · 30분
교향곡 D단조 — Franck: Sinfonie d-Moll ∙ hr-Sinfonieorchester ∙ Marc Minkowski
실황 · hr-Sinfonieorchester – Frankfurt Radio Symphony · 40분
「생명의 양식」 — LVHF 2017: César Franck - Panis Angelicus / Patricia Janečková - soprán
실황 · LVHF · 4분
전주곡, 코랄과 푸가 — E. Kissin plays Franck Prelude, Choral et Fugue
실황 · Robert Walpole ·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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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의 삶
프랑크는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그를 리스트나 탈베르크 같은 건반의 신동으로 키우고 싶어 했어요. 리에주 음악원에서 계명창과 피아노, 오르간을 배우고 1834년에 레오폴 1세 앞에서 첫 연주회를 열 만큼 일찍부터 재능을 보였어요. 1835년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가 사사를 받다가, 프랑스 국적을 얻은 뒤인 1837년에야 비로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피아노에서는 줄곧 1등을 지켰고 대위법도 해마다 성적이 올라 1등까지 차지했지만, 1842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학교를 자퇴하고 말았어요. 이 자퇴에는 아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내몰던 아버지와 평단 사이의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벨기에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는, 1845년 무렵부터 오페라 만능이던 파리를 뒤로하고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길을 택했어요. 오라토리오 《룻》이 혹평을 받은 뒤로는 거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교사와 반주자로 조용히 지냈고, 이 시기에 사랑하는 여인 펠리시테 때문에 아버지와 완전히 등을 돌리고 독립했어요. 1858년 생 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하면서 그의 음악 인생의 중심이 자리를 잡았고, 바흐와 베토벤을 꾸준히 연구하며 실력을 길렀어요. 1872년에는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과 교수가 되었고, 뱅상 당디·에르네스트 쇼송·앙리 뒤파르크 같은 제자들이 그를 거의 아버지처럼 따랐어요. 1880년부터는 작곡에 더욱 몰두해, 1884년 《전주곡, 코랄과 푸가》, 1886년 이자이의 결혼 선물로 쓴 《바이올린 소나타》, 1888년 《교향곡 D단조》 같은 대표작들이 이 무렵에 쏟아져 나왔어요.
1890년 7월 마차 사고로 머리를 다친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걷기도 힘들어졌고, 결국 그해 11월 흉막염과 심낭염으로 세상을 떠나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어요.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오르간곡 《코랄 제3번》도 이 무렵에 남겨졌어요. 생전에는 세간의 몰이해 속에 있었지만,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프랑키스트'라는 그룹을 이루어 스승의 정신을 이어 갔고, 이는 훗날 댕디의 '스콜라 칸토룸'을 통해 현대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독일 음악의 화성과 대위법을 프랑스 기악 전통에 녹여낸 그의 작업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순수 기악 부흥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고 평가받아요.
- 1822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남
- 1834 레오폴 1세 앞에서 첫 연주회를 엶
- 1837 프랑스 국적을 얻어 파리 음악원에 입학
- 1842 파리 음악원을 자퇴함
- 1858 생 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
- 1872 파리 음악원 오르간과 교수가 되고 「생명의 양식」을 작곡
- 1884 《전주곡, 코랄과 푸가》를 작곡
- 1886 외젠 이자이의 결혼 선물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
- 1888 《교향곡 D단조》를 완성
- 1890 마차 사고 후유증과 병으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프랑크는 원래 이름이 세자르오귀스트였는데, 아버지와 완전히 등을 돌린 1846년의 어느 일요일, 오귀스트라는 이름을 버리고 '세자르 프랑크'로 살아가기로 했어요.
- 그가 오르간을 배우던 시절, 작은 오케스트라 같다고 표현할 만큼 깊이 매료된 새 오르간들은 모두 아리스티드 카바예콜이 만든 악기였고, 그는 이 오르간들을 찾아다니며 연주회를 열기도 했어요.
- 프란츠 리스트는 젊은 프랑크의 피아노 트리오를 보고 격려했고, 훗날 바이마르에서 직접 연주했을 뿐 아니라 1866년 생 클로틸드 성당을 찾아와 「내 어찌 그 트리오를 썼던 남자를 잊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어요.
- 1886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결혼 선물로 쓴 곡이에요.
- 프랑크는 집에 연습용 오르간 페달을 따로 구비해 둘 만큼 오르간 연주에 열심이었고, 당시 프랑스 연주자들이 잘 쓰지 않던 페달 기법과 즉흥연주를 적극적으로 되살려 훗날 비도르, 메시앙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오르간 계보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 그의 보조 연주자였던 테오도르 뒤부아는 훗날 파리 음악원 교수가 되어 모리스 라벨의 로마대상 수상을 거부한 바로 그 사람이었어요.
교향곡 1곡
- 교향곡 D단조 교향곡 · 38분
실내악 1곡
-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실내악 · 28분
피아노 1곡
- 전주곡, 코랄과 푸가 피아노 · 18분
종교음악 1곡
- 「생명의 양식」 종교음악 · 4분
낭만 시대 1820~1900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바그너의 악극, 차이콥스키의 발레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오케스트라가 커졌으며, 쇼팽·리스트의 피아노가 꽃을 피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