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데 사라사테 대표작·추천 곡
스페인이 낳은 바이올린의 귀재. 사라사테의 대표작은 『치고이너바이젠』, 『카르멘 환상곡』이에요.
어떤 음악인가
사라사테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바이올린 한 대가 마치 노래하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화려한 기교 속에 스페인의 정열적인 리듬과 집시 선율이 녹아 있어서, 듣는 순간 귀가 번쩍 뜨이는 음악이거든요. 그는 작곡가이기 전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자신이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날 수 있는 곡들을 스스로 써 냈어요. 그래서 그의 곡들은 어렵고 화려한 기교로 가득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나 단번에 반할 만큼 멜로디가 친근하고 매력적이에요. 파가니니 이후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의 대가로 불렸던 그의 명성이, 이 짧고 강렬한 소품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처음 들을 때
사라사테를 들을 땐 먼저 바이올린의 음색 자체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감상에 젖어 흐느적대지 않고 맑고 투명하게 뻗어 나가는 소리가 특징이거든요. 느리고 애수 어린 선율이 흐르다가 갑자기 숨 가쁜 빠르기로 돌변하는 대비, 그리고 그 사이사이 스며든 스페인과 집시풍의 리듬을 느껴 보세요. 기교적으로는 이중음, 빠른 활 놀림, 왼손 피치카토 같은 화려한 기법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데, 그게 과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노래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사라사테 음악의 묘미예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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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사테의 삶
사라사테는 1844년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지역 군악대장이었던 아버지 미겔 사라사테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어려운 악구를 붙들고 씨름하는 걸 보다가 바이올린을 집어 들어 완벽하게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며 재능을 드러냈죠. 여덟 살에 이미 라코루냐에서 첫 공개 연주회를 열었고, 이 연주가 호평을 받으면서 한 후원자의 눈에 띄어 마드리드에서 공부할 길이 열렸어요. 마드리드에서는 여왕 이사벨라 2세의 총애를 받았고, 이후 열두 살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알라르 문하에서 사사하게 되었습니다.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행하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는 열일곱 살에 음악원 최고 영예인 프르미에 프리를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1860년 파리 데뷔에 이어 이듬해 런던 무대에도 서면서, 사라사테는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를 넘나드는 대연주 여행을 시작했어요. 순수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는 맑은 음색, 그리고 거침없는 연주 기교로 가는 곳마다 청중을 사로잡았고, 1870년 파리로 돌아온 뒤에는 더욱 활발히 활동하며 명성을 굳혔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당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이 되어서, 랄로는 「스페인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생상스는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그에게 헌정했어요. 정작 그 자신도 무대에서 돋보일 화려한 소품들을 직접 써서 연주했는데, 1878년의 「치고이너바이젠」과 1883년의 「카르멘 환상곡」이 대표적이에요. 브뤼셀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베르테 마르크스는 그와 함께 유럽과 멕시코, 미국을 돌며 약 600회에 달하는 연주회를 함께했다고 전해집니다.
세계를 누비면서도 사라사테는 해마다 고향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에는 꼭 돌아갔다고 해요. 1904년에는 몇 장의 음반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귀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는 1908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만성 기관지염으로 세상을 떠났고, 172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파리 음악 박물관에 남겼는데 이 악기는 지금도 「사라사테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그가 남긴 「치고이너바이젠」과 「카르멘 환상곡」 같은 곡들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1844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태어남
- 1852 라코루냐에서 첫 공개 연주회를 가짐(여덟 살)
- 1856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알라르에게 배움
- 1860 파리에서 정식 연주자로 데뷔함
- 1861 런던 무대에 데뷔함
- 1870 파리로 돌아와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감
- 1878 「치고이너바이젠」을 작곡함
- 1883 「카르멘 환상곡」을 작곡함
- 1904 소수의 음반 녹음을 남김
- 1908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세상을 떠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려운 악구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걸 지켜보다가, 직접 바이올린을 들고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연주해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 파리로 유학 가던 기차 안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자신도 콜레라를 앓는 시련을 겪었지만, 바욘의 스페인 영사가 그를 돌봐 주고 파리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 그가 떠올리게 한 스페인적인 색채는 당대 작곡가들에게도 번져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이 모두 그를 위해, 혹은 그에게 헌정되어 쓰였어요.
-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쓰는 작곡가는 많아도 「바이올린 음악」을 쓰는 작곡가는 드물다며, 사라사테를 가리켜 비평을 저만치 따돌린 인물이라 평했어요.
- 그가 아끼던 172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지금도 「사라사테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파리 음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단편 「빨간 머리 연맹」에서 홈스와 왓슨이 실제로 사라사테의 연주회에 가는 장면이 나올 만큼, 그는 당대 문화 속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협주곡 2곡
낭만 시대 1820~1900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바그너의 악극, 차이콥스키의 발레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오케스트라가 커졌으며, 쇼팽·리스트의 피아노가 꽃을 피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