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상섭 대표작·소설 추천
염상섭의 대표작은 『삼대』, 『만세전』, 『표본실의 청개구리』예요. 처음 읽는다면 아래 「어떤 책부터 읽을까」를 먼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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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1897~1963)은 서울에서 태어나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이름을 알리고, 『만세전』과 『삼대』로 일제강점기 사람들의 삶을 차분하게 그려 낸 소설가예요.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광복 뒤에는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어요.
아래 책마다 줄거리·작가 이야기·쓰인 때와 독자들의 별점, 한 줄 평이 있어요. 읽은 책은 책비 앱의 서가에 꽂아 두세요.
어떤 작가인가
염상섭의 소설은 크게 외치지 않고 오래 지켜봐요. 일제강점기 서울의 집안과 거리에서 돈과 체면, 생각의 차이로 흔들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 시대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줘요.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이름을 알린 뒤 『만세전』과 『삼대』를 써서, 김동인·현진건과 함께 한국 소설에 사실주의를 뿌리내린 작가로 꼽혀요. 신문기자로 오래 일한 사람답게 인물과 사건을 기록하듯 꼼꼼하게 그려서, 백 년 전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손에 잡힐 듯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재산과 생각을 두고 부딪치는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아요.
처음 읽을 때
처음에는 짧은 「두 파산」으로 염상섭의 차분한 문장에 익숙해지면 좋아요. 『만세전』은 주인공이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라, 그가 어디서 무엇을 보고 놀라는지 따라가면 식민지 조선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나요. 『삼대』에서는 할아버지 조 의관, 아버지 조상훈, 손자 조덕기가 재산과 생각을 두고 어떻게 엇갈리는지 세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세요.
어떤 책부터 읽을까
- 『두 파산』 — 광복 직후 작은 가게를 꾸리던 정례 어머니가 빌린 돈 문제에 얽혀 끝내 가게를 넘기게 되는 이야기예요. 1949년 『신천지』에 발표한 단편으로, 돈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과 마음이 파산해 가는 사람을 함께 보여 줘서 염상섭 문장의 맛을 짧게 보기 좋아요.
- 『만세전』 — 도쿄에서 공부하던 이인화가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고베, 시모노세키, 부산, 김천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이야기예요. 길 위에서 마주치는 식민지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져서 여행기처럼 따라 읽기 좋아요.
- 『삼대』 —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으로, 서울의 한 부잣집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 세 대가 재산과 생각을 두고 부딪치는 이야기예요. 한국 근대 장편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니, 앞의 두 작품으로 문장에 익숙해진 뒤 천천히 읽어 보세요.
처음 → 그다음 → 깊이, 책비 편집자의 순서예요.
염상섭의 삶
염상섭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십대 중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마치고 1918년 게이오 대학 예과에 들어갔어요. 1919년 3월에는 오사카에서 직접 독립선언서를 쓰고, 그곳의 조선 노동자와 학생이 모이는 독립선언 대회를 준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어요. 1920년 『동아일보』가 창간될 때 기자가 되어 돌아왔고, 문예지 『폐허』의 동인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1921년 『개벽』에 실은 첫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어요.
1922년 잡지 『신생활』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던 소설은 잡지가 문을 닫으며 끊겼다가, 1924년 『시대일보』에 「만세전」으로 이름을 바꿔 끝까지 실렸어요. 그는 여러 신문사를 오가며 기자로 일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서, 1931년에는 『조선일보』에 장편 『삼대』를 215회에 걸쳐 연재했어요. 이어 『삼대』의 뒷이야기인 『무화과』도 썼어요. 1936년 만주로 건너가 그곳 신문사에서 일하면서부터 광복 때까지는 소설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광복 뒤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46년 『경향신문』이 창간될 때 초대 편집국장을 맡았어요.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해군 소령으로 들어가 정훈 일을 했고, 전쟁 중의 서울을 그린 장편 『취우』로 서울시문화상을 받았어요. 1954년 서라벌예술대학 학장이 되었고, 그 뒤 아시아자유문학상과 삼일문화상도 받았어요. 1963년 3월, 서울 집에서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 1897서울에서 태어남
- 1919오사카에서 독립선언 대회를 꾀하다 붙잡힘
- 1920『동아일보』 기자로 귀국, 『폐허』 동인
- 1921첫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
- 1924『시대일보』에 「만세전」 연재
- 1931『조선일보』에 『삼대』 연재
- 1946『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
- 1949단편 「두 파산」 발표
- 1954서라벌예술대학 학장
- 1963서울에서 세상을 떠남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는 것
- 『만세전』의 처음 제목은 「묘지」였어요. 1922년 『신생활』에 세 번 실리다 잡지가 폐간되며 끊겼고, 1924년 『시대일보』에서 제목을 「만세전」으로 바꿔 59회로 끝맺었어요.
- 오사카에서 그가 쓴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9일 덴노지 공원에서 열 대회에서 발표할 것이었어요.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경찰이 계획을 알아채 염상섭을 비롯한 23명을 붙잡으면서 대회는 열리지 못했어요.
- 염상섭의 호는 「제월(霽月)」과 「횡보(橫步)」예요. 횡보는 글자 그대로 「옆으로 걷는다」는 뜻이라, 그 이름을 두고 여러 풀이가 전해져요.
- 벤치 모양의 염상섭 동상은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종묘공원 입구에 처음 세워졌어요. 2009년 삼청공원으로 옮겼다가, 2014년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앞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어요.
염상섭의 작품 6권 읽은 책에 체크해 보세요
- 삼대(염상섭선집 1)염상섭
- 만세전염상섭
과정에서 자신이 식민지인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는 정신적인 식민화가 초래되었다면, 그러한 식민화에 가장 깊숙이 침윤된 순간에 식민성을 넘어설 … - 표본실의 청개구리염상섭
- 두 파산염상섭
표제작을 비롯해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 <양과자갑> 등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염상섭 단편모음집 『두 파산』 개정판. - 효풍염상섭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낯선 이 시대에도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 취우 새울림 지평선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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