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브루크너 대표작·추천 곡
성당처럼 쌓아 올린 교향곡. 브루크너의 대표작은 『교향곡 4번 E♭장조 「로맨틱」』, 『교향곡 7번 E장조』, 『교향곡 8번 C단조』예요.
어떤 음악인가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처음 들으면 마치 거대한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받아요. 현악기가 아주 낮고 넓게 울리는 소리로 바닥을 깔면, 그 위로 금관이 천천히, 그러나 장엄하게 쌓여 올라가거든요. 그는 평생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고, 그 오르간 앞에서 보낸 시간이 교향곡 안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어요. 긴 침묵과 느린 템포, 그리고 한 음 한 음 벽돌처럼 쌓아가는 구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한 번 그 울림에 몸을 맡기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음악이에요. 독일-오스트리아 낭만주의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곡가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이 압도적인 스케일과 신앙에서 우러나온 진지함 때문이에요.
처음 들을 때
브루크너를 들을 때는 먼저 현악기가 낮게 깔아주는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 위로 금관악기들이 마치 성당의 기둥을 세우듯 하나씩 쌓여 올라가는 과정이 이 음악의 핵심이에요. 선율은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전개되며, 중간중간 모든 소리가 뚝 멈추는 침묵의 순간이 오히려 다음 울림을 더 크게 만들어 줘요. 특히 바그너 튜바가 등장하는 느린 악장에서는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두텁고 넓은 화성을 느껴 보시면 좋아요.
어떤 곡부터 들을까
- 교향곡 4번 E♭장조 「로맨틱」 — 「로맨틱」이라는 부제처럼 비교적 따뜻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라 브루크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좋아요.
- 교향곡 7번 E장조 — 생전에 처음으로 큰 성공을 안겨준 곡이고, 바그너를 추모하며 쓴 2악장의 장중한 울림이 브루크너다움을 잘 보여줘요.
- 테 데움 C장조 — 합창과 관현악이 함께 쌓아올리는 종교음악으로, 교향곡과는 다른 결의 장엄함을 들을 수 있어요.
- 교향곡 8번 C단조 — 뒤늦게 성공을 맛본 대작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깊이 있는 브루크너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어요.
- 교향곡 9번 D단조 —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난 마지막 교향곡으로, 그의 음악 여정의 끝을 가장 깊이 느껴볼 수 있어요.
실황으로 보기
교향곡 4번 E♭장조 「로맨틱」 — Bruckner Romantic Symphony No 4 - Celibidache Münchner Philharmoniker - 1983 Herkulessaal
실황 · Andrei Popescu · 81분
교향곡 7번 E장조 — Bruckner: 7. Sinfonie ∙ hr-Sinfonieorchester ∙ Christoph Eschenbach
실황 · hr-Sinfonieorchester – Frankfurt Radio Symphony · 70분
교향곡 8번 C단조 — Bruckner Symphony No 8 - Conducted by Celibidache Münchner Philharmoniker Live Tokyo 20 Oc
실황 · Andrei Popescu · 102분
교향곡 9번 D단조 — Bruckner: Symphony No. 9 | Paavo Järvi and the Tonhalle-Orchester Zürich
실황 · DW Classical Music · 62분
모테트 「이곳은 하느님이 지으신 곳」 — Locus iste, WAB 23
실황 · Wiener Sängerknaben / Vienna Boys Choir (official) ·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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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의 삶
브루크너는 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처음 음악을 배웠어요. 어릴 때부터 오르간을 익혔고, 아버지를 도와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성 플로리안 수도원에 들어가 성가대 소년으로 지내며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계속 배웠고, 이곳의 웅장한 오르간에 깊이 매료되었어요. 이후 보조교사로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음악에 대한 배움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성 플로리안 성당의 정식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어요. 즉흥 연주에 특히 뛰어나 오르가니스트로서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어요.
정작 작곡가로서는 늦되게 피어난 사람이었어요. 빈의 이론가 지몬 제히터에게 대위법을, 오토 키츨러에게는 바그너의 음악을 배우며 뒤늦게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어요. 특히 키츨러를 통해 「탄호이저」를 접한 뒤 전혀 다른 음악 세계에 눈을 뜨며 바그너를 평생의 숭배 대상으로 삼게 되었어요. 1868년 제히터의 뒤를 이어 빈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고, 이후 빈 대학에서도 음악을 가르쳤어요. 이 시기에 그는 11개의 교향곡과 미사, 테 데움 같은 대작들을 써냈지만, 바그너파로 낙인찍혀 브람스를 지지하는 평론가들, 특히 비평가 한슬리크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어요. 제자들마저 「청중이 이해하기 쉽게」 해야 한다며 그의 곡을 손보도록 압박했고, 소심한 성격의 브루크너는 그때마다 작품을 고치고 또 고쳐 오늘날까지 혼란스러운 여러 개정판을 남기게 되었어요.
성공은 아주 늦게, 거의 생의 끝자락에야 찾아왔어요. 교향곡 7번과 8번, 그리고 테 데움이 비로소 호응을 얻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어요. 마지막 교향곡 9번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빈에서 숨을 거두었고, 유해는 평생을 지켰던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아래에 묻혔어요. 그의 음악은 제자들을 거쳐, 특히 가깝게 지냈던 구스타프 말러에게로 이어지며 후대 교향곡에 깊은 영향을 남겼어요.
- 1824 오스트리아 안스펠덴에서 태어남
- 1845 성 플로리안으로 돌아와 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함
- 1855 빈의 지몬 제히터에게 작곡을 배우기 시작함
- 1863 오토 키츨러의 권유로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접하고 깊은 영향을 받음
- 1868 빈 음악원의 음악 이론 교수가 됨
- 1869 모테트 「이곳은 하나님이 지으신 곳」 작곡
- 1880 교향곡 4번 「로맨틱」 작곡
- 1883 교향곡 7번 완성,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며 2악장에 추모의 코다를 더함
- 1884 테 데움 작곡, 교향곡 7번의 성공으로 뒤늦은 명성을 얻기 시작함
- 1896 미완성인 교향곡 9번을 남기고 빈에서 사망, 성 플로리안 성당 오르간 아래 안장됨
알아 두면 재미있는 것
- 빈 중앙역에서 바그너를 마중 나갔을 때, 바그너는 빈 음악계 인사들을 다 지나쳐 브루크너에게 달려와 「자네는 내 동료이다」라고 외쳤다고 해요.
- 바그너는 만날 때마다 「자네 교향곡을 연주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빈 필하모닉이 비평가 한슬리크의 눈치를 보느라 끝내 성사되지 못했어요.
- 교향곡 3번은 바그너에게 헌정되어 「바그너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 1883년 교향곡 7번의 2악장을 작곡하던 중 바그너의 부고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추모의 뜻으로 코다 35마디를 더 써넣었다고 해요.
- 정작 브루크너는 바그너 악극의 음악에만 감탄했을 뿐 그 사상에는 무관심해서, 「발퀴레」를 보다가 「브륀힐데는 왜 화형당하나요」라고 옆 사람에게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 유대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와 가까운 사제 관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나치가 그를 선전에 이용했음에도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어요.
교향곡 4곡
- 교향곡 4번 E♭장조 「로맨틱」 교향곡 · 1시간 5분
- 교향곡 7번 E장조 교향곡 · 1시간 5분
- 교향곡 8번 C단조 교향곡 · 1시간 20분
- 교향곡 9번 D단조 교향곡 · 1시간
종교음악 2곡
- 모테트 「이곳은 하느님이 지으신 곳」 종교음악 · 3분
- 테 데움 C장조 종교음악 · 22분
낭만 시대 1820~1900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바그너의 악극, 차이콥스키의 발레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오케스트라가 커졌으며, 쇼팽·리스트의 피아노가 꽃을 피웠어요.